

















자연스러운 너무나 자연스러운 : 권태현(미술비평가)
“... 인공물은 인류에게 자연스럽다.”
- Walter Ong, Orality and Literacy: The Technologizing of the Word, London: Routledge, 1982, p.81.
녹색의 식물이 싱그럽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자연스럽게, 우리는 그것이 자연적인 이미지라고 판단한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유전자 공학으로 만들어진 순수한 인공물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여기에서 볼 수 있듯, 자연과 인공의 문제는 이분법을 벗어난 지 오래다.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는 자연과 문화의 구분이나 이분법이 근대적 산물일 뿐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인공물이 자연을 이루고 있다는 말은,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환경파괴 같은 것을 넘어선다. 우리는 애초에 인공물을 통해서만 자연을 인식할 수 있다. 더 나아가면, 자연이라는 것 자체가 인공적인 관념이기도 하다.
백인환은 주변의 인위적인 자연물(혹은 자연적인 인공물)들을 꽤 오랫동안 담아왔다. 이 작업은 출사 여행을 떠나거나, 특별한 취재를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작가는 지속적으로 주변 환경에서 발견한 장면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수집해왔다. 이런 작업은 일상적인 풍경을 관찰하고, 특정한 계열의 이미지들을 포착하여, 연결하고 꿰어내는 작가적 실천의 결과물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작가가 주제 삼은 인위적인 자연물들이 도처에 깔려 이미 우리의 환경을 이루고 있기에 가능한 작업이기도 하다. 백인환이 수집한 가짜 자연물들의 이미지는 수없이 반복되면서 그것이 구성하고 있는 진짜 환경의 문제를 건드리게 된다. 그러한 인공물이 이미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하나의 환경적 조건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작가는 초기 작업부터 인위적인 자연물들을 작업에 활용해왔다. 그는 〈Garden Room〉 시리즈를 만들면서 “이상적인 자연”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역설적으로 인위적인 오브제들을 사용했다. 지하철 광고판에 붙어있을 법한 평면적인 자연의 이미지를 바탕에 두고서 인공 풀, 조화, 모형 새 등의 플라스틱 오브제들을 배치하고 촬영하여 또 다른 평면 이미지로 만드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의 자연에 대한 관념이 자연물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디지털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반추해낸다. 문제는 이것이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오늘날 우리의 인식을 형성하는 대부분의 이미지들이 디지털 이미지라는 사실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런 맥락에서 백인환이 전시와 함께 엮어낸 사진 책은, 의외로 최초의 사진 책인 『자연의 연필(The Pencil of Nature)』을 떠올리게 한다. 그 책을 만든 윌리엄 헨리 폭스 텔봇(William Henry Fox Talbot)은 사진 자체를 ‘자연의 연필’이라고 생각했다. 손으로 그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빛과 물질들을 통해 그림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사진은 여전히 자연의 연필이다. 디지털 사진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디지털 사진은 광학이나 화학같이 우리가 쉽게 자연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영역뿐만 아니라, 이미지 프로세싱 알고리즘의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 오늘날 사진 이미지는 광학보다 프로그래밍의 영역이 더 큰 비중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아가 이미지 프로세싱은 이제 너무나 ‘자연스럽다.’ 손을 움직이지 않아도, 알고리즘이 자연스럽게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마침 백인환의 이번 작업은 사진이라는 이미지가 작동하는 디지털 환경을 살피는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말끔하게 보정을 마친 이미지 옆에는, 편집 툴로 작업을 할 때 보게 되는 눈금이나 격자무늬가 드러난 이미지, 혹은 가상적으로 분할된 레이어를 물리적으로 꺼내 겹쳐놓는 등의 설치 작업이 함께 놓여있다.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디지털 이미지 프로세스를 사유할 수 있는 대상으로 포착하여 형식화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병치된 두 방법론의 작업들은 아주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 인식의 체계와 미학적 바탕을 공유하고 있다. 디지털이라는 조건과 이미지 프로세싱 또한, 인공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환경이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자연물을 찍은 작업들을 엮어내며, 중간중간 디지털 이미지에서 파생되는 작업들을 끼워 넣은 이유도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표지에 인공잔디가 붙은 그 책의 중간 즈음. 커다란 나무의 사진이 하나 있다. 뿌리부터 몸통까지 갈라진 틈새를 시멘트가 가득 채우고 있는. 그 시멘트가 아니었으면 나무는 진작에 쓰러졌을 것처럼 보인다. 시멘트 한가운데로 새파란 작은 넝쿨이 총총 타고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자연스러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공적인 이미지.
자연스러운 너무나 자연스러운 : 권태현(미술비평가)
“... 인공물은 인류에게 자연스럽다.”
- Walter Ong, Orality and Literacy: The Technologizing of the Word, London: Routledge, 1982, p.81.
녹색의 식물이 싱그럽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자연스럽게, 우리는 그것이 자연적인 이미지라고 판단한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유전자 공학으로 만들어진 순수한 인공물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여기에서 볼 수 있듯, 자연과 인공의 문제는 이분법을 벗어난 지 오래다.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는 자연과 문화의 구분이나 이분법이 근대적 산물일 뿐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인공물이 자연을 이루고 있다는 말은,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환경파괴 같은 것을 넘어선다. 우리는 애초에 인공물을 통해서만 자연을 인식할 수 있다. 더 나아가면, 자연이라는 것 자체가 인공적인 관념이기도 하다.
백인환은 주변의 인위적인 자연물(혹은 자연적인 인공물)들을 꽤 오랫동안 담아왔다. 이 작업은 출사 여행을 떠나거나, 특별한 취재를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작가는 지속적으로 주변 환경에서 발견한 장면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수집해왔다. 이런 작업은 일상적인 풍경을 관찰하고, 특정한 계열의 이미지들을 포착하여, 연결하고 꿰어내는 작가적 실천의 결과물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작가가 주제 삼은 인위적인 자연물들이 도처에 깔려 이미 우리의 환경을 이루고 있기에 가능한 작업이기도 하다. 백인환이 수집한 가짜 자연물들의 이미지는 수없이 반복되면서 그것이 구성하고 있는 진짜 환경의 문제를 건드리게 된다. 그러한 인공물이 이미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하나의 환경적 조건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작가는 초기 작업부터 인위적인 자연물들을 작업에 활용해왔다. 그는 〈Garden Room〉 시리즈를 만들면서 “이상적인 자연”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역설적으로 인위적인 오브제들을 사용했다. 지하철 광고판에 붙어있을 법한 평면적인 자연의 이미지를 바탕에 두고서 인공 풀, 조화, 모형 새 등의 플라스틱 오브제들을 배치하고 촬영하여 또 다른 평면 이미지로 만드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의 자연에 대한 관념이 자연물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디지털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반추해낸다. 문제는 이것이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오늘날 우리의 인식을 형성하는 대부분의 이미지들이 디지털 이미지라는 사실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런 맥락에서 백인환이 전시와 함께 엮어낸 사진 책은, 의외로 최초의 사진 책인 『자연의 연필(The Pencil of Nature)』을 떠올리게 한다. 그 책을 만든 윌리엄 헨리 폭스 텔봇(William Henry Fox Talbot)은 사진 자체를 ‘자연의 연필’이라고 생각했다. 손으로 그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빛과 물질들을 통해 그림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사진은 여전히 자연의 연필이다. 디지털 사진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디지털 사진은 광학이나 화학같이 우리가 쉽게 자연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영역뿐만 아니라, 이미지 프로세싱 알고리즘의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 오늘날 사진 이미지는 광학보다 프로그래밍의 영역이 더 큰 비중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아가 이미지 프로세싱은 이제 너무나 ‘자연스럽다.’ 손을 움직이지 않아도, 알고리즘이 자연스럽게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마침 백인환의 이번 작업은 사진이라는 이미지가 작동하는 디지털 환경을 살피는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말끔하게 보정을 마친 이미지 옆에는, 편집 툴로 작업을 할 때 보게 되는 눈금이나 격자무늬가 드러난 이미지, 혹은 가상적으로 분할된 레이어를 물리적으로 꺼내 겹쳐놓는 등의 설치 작업이 함께 놓여있다.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디지털 이미지 프로세스를 사유할 수 있는 대상으로 포착하여 형식화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병치된 두 방법론의 작업들은 아주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 인식의 체계와 미학적 바탕을 공유하고 있다. 디지털이라는 조건과 이미지 프로세싱 또한, 인공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환경이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자연물을 찍은 작업들을 엮어내며, 중간중간 디지털 이미지에서 파생되는 작업들을 끼워 넣은 이유도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표지에 인공잔디가 붙은 그 책의 중간 즈음. 커다란 나무의 사진이 하나 있다. 뿌리부터 몸통까지 갈라진 틈새를 시멘트가 가득 채우고 있는. 그 시멘트가 아니었으면 나무는 진작에 쓰러졌을 것처럼 보인다. 시멘트 한가운데로 새파란 작은 넝쿨이 총총 타고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자연스러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공적인 이미지.